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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청빙 어떻게 할 것인가? 김재윤 저.
작성자 홈관리 등록일 2022-02-15 18:26:24 조회수 57

4. 담임목사 청빙 어떻게 할 것인가?


담임목사 청빙은 개교회에 있어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바른 지식이 없다보니 제대로 된 청빙을 하지 못해 교회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1) 교회 사역 스펙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교회들은 대형교회 출신들을 선호한다. 몇 명 교회에서 사역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고, 몇 년 동안 사역했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목사는 계약을 맺고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인데, 부목사가 설교를 잘 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 그것을 두고 볼 담임목회자는 없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설교를 잘 하는 부목사는 어느 교회에도 오래 있을 수 없는 것이 기정 사실이다. 때문에 한 교회에서 얼마나 오래 사역했는지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전 사역지의 담임목회자의 추천이나 의견도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이해 관계에 따른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물어볼 필요도 없고 들을 필요도 없다. 뒷조사라는 것이 객관적인 정보에 실제적으로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목사가 교단법과 사회법에 무흠하고 교단에 소속되어 있으면 이단과 무관하며 아무 흠이 없고 문제가 없는 것이다. 

합동 교단에서는 강도사 인허를 받을 때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정신 감정 소견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합동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사실이다. 교단법에 목사의 자격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자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M. Div.를 요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대형교회들은 기업과 같이 운영되고 대형교회에 실력이 있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로 인맥이나 정치나 뒷배경으로 들어가는 경우들이 허다하고, 대형교회 출신들이 설교 표절 등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사역 스펙을 따지는 것 자체가 교회가 세속화되고 물량화 되었다는 방증이고, 어느 교회 출신이며, 어떤 목회자가 추천하느냐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실상 그 목사가 책임져 줄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바른 청빙을 위해서는 일체 허탄한 사람들의 말들에는 귀를 닫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목사 사모를 따지는 것도 부질 없는 것이 사모가 목회하는 것도 아니고, 목사 사모를 따지는 건 사실상 한국교회가 유일하다. 목사 자녀나 가족이나 가문이나 족보를 따지는 것도 성경적인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고 목사 자신만 보면 된다.

 

2) 평판이나 중직자나 목회자들의 의견이나 추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인본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이다. 추천자에게 직접 추천서를 보내게 하는 것도 지원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지원자를 배려하지 않은 처사이고, 이메일로 접수를 받으면 간단할 것을 USB에 설교를 담아 우편으로 보내게 하는 것도 참으로 번거롭게 만드는 일이다. 내정자가 정해져 있다면 아예 청빙 공고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 청빙 공고에 개인 휴대폰 번호를 넣는 것도 물어볼 것이 있으면 교회 사무실에 물어보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불순한 의도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보통 담임목사 청빙을 하면 신상털이를 샅샅이 하는데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목사에 대해서는 그렇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목사의 성품이나 인격 따지는 것도 유한하고 불완전한 사람에 대해 몰이해에 기초한 것이다. 성품 좋고 인격 좋은 사람 뽑는 것이 담임목사 청빙이 아니다. 담임목사에게 필요한 건 설교 능력이고, 교회에 속한 이들에게 필요한 사람은 제대로 잘 설교할 수 있는 설교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교회의 사활은 강단에 달려 있고, 제대로 잘 설교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기 때문에 목사의 설교가 목사를 증명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들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지난 일들에 대해 뒷조사를 하고 신상털이를 할 것이 아니라, 지원 서류들을 보고 설교를 살피고, 직접 초청해 설교들을 듣고 그 중에서 교인들 다수가 원하는 설교자를 청빙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바람직한 방식이다. 성직매매를 통해 개인적으로 뒷돈을 주고 받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뒷돈을 개인에게 주고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로써, 그 돈이 자신을 지켜주지도 못할뿐더러, 그런 식으로 담임목사 청빙을 통해 뒷돈을 노리는 곳은 곧 내보내고 또 돈을 줄 사람을 찾기 때문에 그런 곳은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인간관계는 상호적이고 사람에게 달린 일이다. 좋은 중직자는 좋은 목사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이고, 좋은 목회자는 좋은 목사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 어떤 사람이 무슨 주장을 하거나 말을 할 때에는 말을 하는 그 사람을 먼저 살펴 들을 만한 신빙성 있는 말을 할 사람인지를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이며, 목사들이 경우 자신이 어떠한 대가를 얻거나 돈을 받지 않는 이상 다른 목사가 잘 되는 꼴을 못보기 때문에 목사들이 다른 목사에 대해 추천하는 것은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고 보아야 하고 형식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청빙 지원 서류들을 간소화 하는 것이 필요하며, 최종적인 단계에 들어갔을 때 필요한 서류들을 요구하는 것이 낫다. 짧은 이력이나 오래된 이력이나 악의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코지를 일삼는 자에 대한 이력은 빼는 것이 아무 문제 없는 것이며, 지난 과거나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그 설교자가 지닌 설교 능력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설교자에게 두신 설교 능력이 중요한 것이고, 교회에 필요한 것이다. 

노회는 개교회 담임목사 청빙에 협조하고 도우면 되는 것이고, 임시 당회장을 비롯해 교회 밖의 사람들은 개교회 담임목사 청빙에 왈가왈부 개입할 일이 아니고, 교회 밖의 사람들의 말들에 개교회가 휘둘릴 일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공교회를 사유화시키는 세습은 이제 근절되어야 하고, 세습을 찬동하는 교인들도 정신 차려야 할 일이며, 세습을 한 목사들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침묵해야 할 일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주며 유력 교회 담임목사 사위가 되어 담임목사가 되는 방식의 세습을 정당화하고 고착화하는 것은 세계 교회사에 그 유래가 없는 한국 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으로써 세습의 큰 문제는 그로 인해 타인에게 실제적으로 큰 피해가 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아들이나 사위로 세습하기 위해 교인들이 바라는 목회자를 낙마시키기 위해 근거 없는 유언비어들로 명예를 훼손하는 등의 행위들이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 때문에 타인에 대한 악한 말들은 그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귀 기울여 들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타 교회 위임목사를 빼 내 오는 것도 당연히 상식적으로 잘못된 것으로써, 자신의 교회가 부른 교회 목사가 더 좋은 교회에서 부르면 가는 것을 용인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타 교회 위임목사를 부르는 것이 잘못된 일이며, 자신을 청빙한 교인들을 두고 더 큰 좋은 조건의 교회로 가는 것도 잘못된 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더욱이 자신이 개척한 교회 교인들을 두고 타 교회를 기웃거리거나, 타 교회 담임목사로 가는 행태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사안으로써 자신을 믿고 함께 고생한 개척교회 멤버들을 두고 타 교회 담임목사로 가는 행태는 목회를 직업으로 여기고 있는게 아닌지를 살펴 보아야 하는 심각한 잘못된 행태인 것이다. 

교수 출신을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것도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닌 것이 일단 교수는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고 낫기 때문에 사실상 안정적인 교수직을 두고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담임목사로 오란다고 가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고, 교수를 한다고 설교를 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수 출신을 부르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이 되지 못한다. 후임목사 청빙의 경우에도 결국 중요한 것은 중직자들과 교인들의 뜻이기 때문에 담임목사 청빙의 원리는 교인 다수가 원하는 설교자가 청빙되는 것이 성경적인 방식이며, 반대하는 소수가 찬성하는 다수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것이며, 공산주의가 아닌 이상에야 만장일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아직 임기가 한참 남은 상태에서 후임목사를 불러 함께 사역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써 후임목사라는 것 자체가 언제 나가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자리이기 때문에 후임목사라는 미끼에 현혹될 일도 아니다. 

교회 합병 또한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개척한 교인들을 두고 교회를 합병해 후임목사로 들어가는 것도 사실상 어리석은 일이며, 두 교회가 한 교회로 합쳐지는 것은 실익보다는 부작용이 훨씬 많은 일이다. 설교 표절을 하거나 제대로 설교하지 못하는 설교자는 하루 빨리 내보내는 것이 답이고, 교인들이 사는 길이고, 교인들이 싫어 나가라고 하는 것이 담임목사가 나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고, 위임목사라는 이유로 교인들이 듣기 싫은 설교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담임목사 청빙이나 후임목사 청빙에서 개인이 뒷돈을 주고 받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저주 받을 악행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설교 능력을 갖춘 설교자를 청빙하지 못하면 교회가 문 닫을 일만 남게 되기 때문에 원로 목회자가 약속 받은 예우를 평생 받기 위해서는 사실상 설교 능력을 갖춘 설교자를 등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며, 제대로 잘 설교하는 설교자의 교회가 앞으로 잘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인 것이, 이제 교인들은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교회로 옮기는 추세이고, 설교자의 설교가 교회 부흥의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이나 전도폭발훈련과 같은 특수한 목회 철학을 고집할 것도 하나 없는 것이 그러한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로써 자신과 같은 목사나 자기 마음에 쏙 들 목사는 자녀를 비롯해 아무도 없고, 목사에게 보아야 하는 것은 그 목사의 설교로서 설교를 제대로 잘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고 목사의 신학과 설교만 보면 되는 것이다. 목사가 어느 학교에서 제대로 신학을 배웠는지는 아주 중요한 일이며, 설교는 신학과 맞물려 있고, 기독교는 외래 종교이기 때문에 외국의 제대로 신학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유학을 한 것은 한국의 어느 학교에서 공부한 것보다 승하고 중요한 것이다.

 

3) 아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개교회 담임목사 청빙을 보면 주로 그 교회 아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선호하는데 이것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고 성경 말씀대로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아는 누구를 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그 목사의 설교들을 유심히 분별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청빙되는 설교자의 설교 능력에 교회의 사활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원로 목회자의 노후도 사실상 청빙되는 후임목사의 설교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고, 제대로 잘 설교하는 설교자를 얻는 것이 지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익한 일이다. 믿을 사람은 제대로 설교하는 사람이고, 좋은 목사도 제대로 설교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설교가 그 목사를 증명해 주는 객관적인 사실이며, 설교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속일 수 없고,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담임목회자의 설교이기 때문에 목사를 볼 때에는 다른 것들을 볼 것이 아니라, 그 목사의 설교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설교자를 파송하시고 설교자가 바르게 잘 설교할 때 그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다. 결국 성경적인 담임목사 청빙의 원리는 목회자의 설교를 보고 제대로 잘 설교하는 설교자를 청빙하는 것이고,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설교를 분별할 수 있는 귀와 안목과 분별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것이 결여되어 있으면 제대로 설교하지 못하는 설교자를 청빙해 듣기 힘든 설교를 들으며 고통 받는 것이고, 제대로 설교하는 설교자를 얻으면 행복하게 믿음 생활하며 남은 생애가 복되게 되는 것이다. 

어디 출신인지, 지난 날 어땠는지, 어느 목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목사에 대해서는 그 목사의 설교를 보아야 하는 것이며, 교회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목사 자기 집에 데리고 살 것도 아니고, 교회에 가서 항상 들어야 하는 것은 담임목회자의 설교이기 때문에 제대로 설교하는 목사가 중직자들과 제직들과 교인들과 교회 직원들과 교역자들에게 가장 좋은 목사인 것이다. 청빙되는 목사는 겸손히 모든 교회 직원들과 교역자들을 그대로 가며, 원로 목사님께서 계시면 아들과 같이 최선을 다해 진실하게 평생 잘 하며, 노회 선배님들 잘 섬기며(노회도 좋은 설교자를 얻으면 그 설교자로 말미암아 함께 유익을 얻게 된다.), 교회 운영은 장로님들께 맡기며, 자신이 해야 하는 일들에만 충실하며, 원로 목사님 계시면 평생 한달의 첫째 주일 예배 낮 강단은 원로 목사님께 부탁드리고 수시로 기회 되는 대로 원로 목사님께 설교를 부탁드리는 것이 평생 교회를 섬기시고 많은 경륜과 설교를 하신 원로 목사님을 통해 교회와 후임목사가 유익을 얻는 첩경이다. 겸손한 자세로 후임목사는 원로 목사님과 장로님들께 배우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한다. 

교회가 청빙되는 목사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고 요구하면 되는 일이고, 청빙되는 목사는 모든 것을 교회의 뜻에 따르며 교회 실정을 잘 아시고 이제껏 교회를 열심히 섬겨 오신 교회에 속한 모든 분들께 잘 배우며 겸손히 섬기면 되고 아무 것도 바꿀려고 할 것 없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인 설교나 제대로 하며 사심 없이 욕심을 버리고 교회를 잘 섬기고 원로 목사님이 계시면 원로목사님을 성심껏 잘 모시는 것이 후임목사의 도리이고 사람의 도리이고 신앙의 연조가 높으신 장로님들을 존중하고 잘 따르며 겸손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인 설교에 집중해 그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목사의 임무이고, 자신이 해야 하는 설교 잘 하면 된다. 교회가 필요한 건 설교자이고, 따라서 담임목사 청빙에서 교회가 고려하고 살피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바로 설교자의 설교 능력으로서 그것만 보면 되고 제대로 잘 설교하는 설교자를 얻으면 교회의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이고, 제대로 설교하는 실력 있는 설교자를 얻으면 교회와 노회와 총회와 교단과 기독교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이다. 목사에게 바라고 기대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다름 아닌 제대로 잘 설교할 수 있는 설교 능력이고 제대로 잘 설교하는 설교자가 세상에서 가장 유익하고 필요한 귀한 사람이다. 제대로 잘 설교하는 설교자를 얻어 함께 하며 선대하면 그 설교자를 통해 자신이 남은 노후의 모든 복락과 영원한 복을 누리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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